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포스 2세 (문단 편집) === 확장 정책 === 군제 개혁을 완료한 뒤, 마케도니아는 필리포스 2세의 지도하에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358년, 필리포스 2세는 일리리아의 왕 [[바르딜리스 1세]]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잃어버렸던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 그 후 동부 해안 지대로 눈길을 돌려 기원전 356년 암피폴리스, 피드나, 포티데이아를 정복했다. 암피폴리스는 아테네가 세운 식민도시였기에 이 일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였지만, 당시 아테네는 이웃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서 암피폴리스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는 뒤이어 트라키아인을 격파하고 크레니데스를 공략한 뒤, 도시 이름을 필리피로 바꾸었다. 이 도시를 얻으면서, 마케도니아는 이제 팡가이온 산맥의 풍요로운 광산을 이용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광산에서 채굴된 광물 가치가 연간 1,000달란트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이 광산 채굴에서 얻은 소득을 용병을 모집하고, 다른 도시의 정치인들과 사절들에게 선물을 줘서 자기 편으로 끌여들이는 식으로 사용했다. 필리포스 2세는 여러 귀족 가문들을 자신에게 묶어두기 위해 가문의 자제들을 궁정에 보내도록 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질'''이었지만, 왕의 호의를 받고 고급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재들로 변화했다. 또한 정복한 그리스 도시들에 수비대를 남겨뒀지만, 각 도시의 정부들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은 정복된 도시 주민들이 품을 불만을 최소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필리포스 2세는 수월하게 해안 지대를 장악할 수 있었다. 기원전 355년 ~ 354년,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은 에게 해 북부의 마지막 대도시인 메토네를 포위하여 장기간 공성전을 벌인 끝에 함락했다. 이때 앞장서서 군대를 지휘하다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다리를 절뚝이는 등 여러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이후에도 여러 전장에서 군대를 친히 이끌었다. 그러던 중 포키아인들이 '''[[델포이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를 점령하고 테살리아를 압박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모두 포키아의 편에 서자, 마케도니아 [[아르게아스 왕조|아르게아스 왕가]]와 오래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테살리아의 알류아드 가문은 마케도니아에 구원을 요청했다. 필리포스 2세는 즉시 남하했고, 기원전 352년 크로커스 평원 전투에서 포키아 사령관 오노마르코스를 격파했다. 테살리아인들은 포키아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로 그를 '''테살리아 동맹의 아르콘(지도자)'''으로 추대했다.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남하 정책을 경게하여 테르모필레를 봉쇄하자, 그는 [[트라키아]]로 돌아가서 [[오드뤼사이 왕국]]의 왕 [[케르소블렙테스]]를 결정적으로 격파하고 트라키아인들을 복속시켰다. 필리포스 2세는 뒤이어 동부의 할키디키 반도로 눈길을 돌렸다. 특히 할키디키 반도 도시국가들 중 가장 강한 올린토스가 주요 목표였다. 그곳에는 그의 이복동생 두 명이 있었고,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있기도 했기에 그의 입지에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토로네, 메키베르나, 스테이지라 등 여러 소규모 도시들을 공략하면서 뜸을 들인 뒤, 기원전 349년 올린토스에 사절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그들이 거절하자 즉시 포위했고 1년만에 함락시킨 후 도시를 파괴했으며, 두 [[이복형제]]를 살해했다. 올린토스 주민들은 전원 노예로 팔려갔다. 아테네는 올린토스를 돕기로 했지만 제 때에 움직이지 못했다. 이어서 기원전 346년, '''마케도니아는 포키아를 병합하면서 그리스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결국 아테네는 필로크라테스 평화 협약을 체결하여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종식했다. 기원전 343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뒤, 기원전 340년 비잔티움을 포위하던 중 비잔티움에 곡물을 수송하던 아테네 함선들을 포획했다. 이 일로 아테네 민심은 격앙했고, [[데모스테네스]]의 필리포스 탄핵 연설에 따라 마케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초기엔 마케도니아 함대가 아테네 함대의 압박을 받고 흑해로 퇴각해야 했으며, 비잔티움 공방전 역시 실패로 돌아가는 등 필리포스 2세에게 영 좋지 않은 흐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는 도나우 강에서 이민족들을 격파해 군심을 다잡은 뒤, 기원전 339년 아테네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그리스 중부로 쳐들어가서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했다. 기원전 338년 8월 초, [[고대 아테네|아테네]], [[테베#s-1]], 그리고 [[코린토스]] 등 [[폴리스#s-2|도시국가]]들의 연합군을 상대로 [[카이로네이아 전투]]를 벌였다.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도 참여한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아테네와 테베가 전의를 상실하고 투항하자,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에 비해 매우 우수한 해군을 갖춘 아테네는 훗날 페르시아 원정 때 많은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아주 온건하게 대우했다. 반면 테베에 수비대를 주둔시켰고, 반(反) 마케도니아 인사들을 대거 잡아들였으며, 독자적으로 외교 및 국방을 수행할 권리도 박탈했다. 기원전 337년 [[스파르타]]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폴리스#s-2|도시국가]]가 속한 [[코린토스 동맹]]을 수립하고, 자신이 맹주를 맡았다.''' 그는 140여 년전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침략으로 여러 도시들이 파괴된 일을 상기시키며, 페르시아 정벌이 완수될 때까지 [[도시국가]]들끼리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맹세하게 했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는 아민타스, 안드로메네스, [[아탈로스]], 그리고 [[파르메니온]]에게 10,000명의 병력을 맡겨 [[소아시아]]로 파견했다. 그들은 초기에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쪽 해안 도시 몇개를 공략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로도스]]의 용병대장 [[멤논#s-2]]이 이끄는 페르시아군에게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패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